설민석 사태, '지식 소매상'으로 '만능 열쇠' 꿈꾼 교양예능의 현실

김보영 기자I 2020.12.31 11:01:00

설민석 표절 논란 인정→하차…교양 예능들 초비상
바닥난 지식…신뢰성 의심 폭발이 현 상황 낳아
과도한 권위 부여한 방송사들의 안일함이 낳은 부작용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스타 강사 설민석이 역사 왜곡 논란에 이어 석사 논문 표절까지 인정하며 모든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그가 고정 출연 중이던 교양 예능 프로그램들에 일제히 불똥이 떨어졌다. 특히 해당 프로그램들은 기획 취지에서부터 설민석의 스타성과 전문성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만큼 타격이 크다. 그의 역할을 대체할 전문가 섭외도 쉽지 않을뿐더러 향후 방송의 방향성 자체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논란의 당사자 못지않게 특정 출연진을 만능 전문가처럼 소비하듯 섭외하고 능력 이상의 책임을 안기는 교양형 예능의 제작 환경이 이번 사태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설민석은 다가가기 어려웠던 교양형 정보를 알기 쉽고 흥미롭게 정리해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스토리텔러이자 강사지 완벽한 ‘역사 전문가’라고 볼 수는 없었다”며 “그런데도 방송사들은 그의 권위와 스타성에만 기대느라 다른 전문가 자문을 둔다거나 정보에 대한 사전 검증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그에게 ‘만능 전문가’, ‘역사의 신’ 특권을 과도하게 부여했다. 이번 사태는 시청률과 흥미, 속도만 좇던 방송사의 안일함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꼬집었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표절·역사왜곡 논란→하차…교양 예능들 비상

지난 30일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이하 ‘선녀들’)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설민석 씨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며 “향후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 논의 중이며 이번 주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방송은 결방된다. 시청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린다”고 알렸다. 지난 12일 첫 방송을 시작한 tvN 예능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이하 ‘벌거벗은 세계사’)측도 “설민석 씨의 하차가 맞다”며 프로그램 폐지 등 방송의 향방과 관련한 입장을 정리 중이라고 전했다.

두 프로그램의 연이은 타격은 설민석이 전날 자신의 석사 논문 표절 의혹을 인정하고 하차 의사를 밝히면서 현실화됐다. 설민석은 페이스북을 통해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했음을 인정한다”며 “책임을 통감해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고 사과 입장을 전했다. 그는 현재 TV 프로그램은 물론 유튜브 활동까지 모두 중단한 상태다.


앞서 설민석은 그가 지난 2010년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발표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이념 논쟁 연구’란 석사 논문이 2008년 서강대 교육대학원생이 쓴 논문 내용과 50% 이상 같았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전문가로서 그의 신뢰성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 표절 의혹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 19일 방송된 ‘벌거벗은 세계사’ 2회에서부터 잘못된 역사 정보 전달로 질타를 받으며 시험대에 섰다. 당시 설민석은 이집트와 로마 문명,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강의를 펼쳤다. 그러나 고고학자이자 이집트 문명과 관련한 역사 지식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이 이를 두고 “사실 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알려지며 역사 왜곡 논란에 직면했다. 이후 이전 편인 독일 나치 역사 편에 대한 오류도 지적됐고 설민석이 유튜브 채널에서 재즈와 R&B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 내용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해당 유튜브 내용을 두고 “허위사실 유포나 다름 없는 설명”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 후 온라인상에서는 역사와 관계없던 설민석의 연극영화과 전공 대학 스펙이 재조명됐고 그의 강의에 대한 신뢰도까지 하락했다. 방송으로 차곡차곡 쌓인 내용 전달 오류와 역사 왜곡 지적들이 전문가로서 그의 신뢰도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며 ‘표절 의혹’이란 폭발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사진=tvN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화면)


에듀테이너의 몰락…한계 이상 권위 맡긴 방송사 책임

그 전까지 설민석은 방송가에 ‘에듀테이너’란 수식어를 탄생시키고 침체됐던 교양 예능에 새 지평을 연 업적을 세운 인물이었다.

학사 전공은 연극영화과였지만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통해 한국사 강사란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는 이례성, 타고난 발음과 입담, 명쾌한 강의력으로 이미 학원가에서 수강생들에게 인기 만점이던 그는 2016년 MBC ‘무한도전’ 역사 특집 편 출연 이후 단숨에 방송가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며 수많은 프로그램들에 얼굴을 비췄다. 이를 두고 한 지상파 예능 PD는 “어려운 지식을 누구나 알기 쉽고 빠르게, 그것도 한 편의 영화처럼 몰입도 있게 연기하며 전달해주는 전문가는 설민석이 독보적이었다”며 “진부한 섭외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방송사들이 그렇게나 그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려 했던 건 그처럼 방송이 추구해야 할 정보 전달의 의무, 재미 충족을 둘 다 만족시킬 전문가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출연진 한 명이 모든 것을 푸는 ‘만능 열쇠’인 것처럼 프로그램 전체를 내맡긴 방송사들의 행태는 분명 무책임했다는 비판은 떠나지 않는다.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이를 두고 “강형욱이 뛰어난 반려견 훈련사라고 해서 그에게 아이들 교육 자문을 구해선 안 되듯, 강의에 특화된 설민석과 같은 ‘지식 소매상’들이 방송에서 만능키처럼 활용되는 게 문제”라며 “설민석이 지식 소매상으로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해도 한계는 있으며, 그 한계 이상의 권위를 얻고 그것들을 행사할 땐 분명 부작용이 생긴다. 이들에게 과도한 전문가적 지위를 부여하며 손쉽게 지성과 교양을 외주화하려고 한 방송사의 태도는 제쳐두고 그의 하차를 ‘사필귀정’이라 논할 수는 없다”고 일침했다.

(사진=tvN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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